임오군란은 조선 말기인 1882년(고종 19년)에 발생한 한국의 군사적 사건으로, 군인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무장으로 일어나는 사태를 말합니다. 국내의 혼란과 외세의 압력이 겹쳐 발생한 사건으로, 이 시기에는 제국의 독립과 개화를 주장하는 개화파와 제국의 보수를 주장하는 보수파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군인들 중에서도 군단과 군관들이 독립과 개화를 주장하는 흐름이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임오군란의 배경이었는데요. 임오군란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발발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병사들이 동료 병사들을 설득하거나 병영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임오군란은 일시적인 반란으로 끝나지 않고, 일부 지역에서는 반란이 확산되어 크게 번지기도 했고, 독립과 개화를 주장하는 군인들과 보수적인 정부군의 충돌이 격화되었습니다. 설명 자료와 함께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자료 출처: 역사한방(역사저널 그날)
당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기도 했는데요. 구식 군인들은 대원군의 재집권을 원했으며, 무위영과 장어영, 별기군을 폐지하고, 5 군영을 복설,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는데요.
급료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하여 흥선대원군의 개입으로 반란으로까지 확대되었는데, 고종이 진행했던 강화도 조약(1876)과 조사 시찰단(1881) 등의 개화 정책에 대해 반발을 품었던 세력들까지 합세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으로 또다시 서양세력을 배척하면 일본이 득세할 것을 우려하여 납치하여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을 납치합니다.
임오군란은 결국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반란에 참여한 일부 군인들은 처형되거나 형벌을 받았는데요.
이후에는 개화 정책의 실패 등으로 인해 조선의 혼란이 깊어지게 되었고, 이는 추후의 조선의 몰락과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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