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1392년 ~ 1897년)의 결혼식은 현대와는 많이 다른 풍습과 절차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결혼식은 사회적인 행사로,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하여 신부와 신랑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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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정3품 이상만 입는다는 호랑이 관복을 입고, 신부는 공주들이 입는 궁중 예복을 입었습니다. 결혼식만큼은 신랑은 고위직 공무원, 신부는 공주 대접을 받았는데요. 100년 전 결혼식을 그대로 담은 귀한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현대 결혼식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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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엠빅뉴스
신랑, 신부를 중매하는 매파는 요즘의 결혼정보업체의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 전, 잘 맞는지 궁합을 보고, 신랑 측에서 함을 보냈는데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예물을 구경했습니다.
일종의 혼인증명서인 ‘납폐서’는 장례식 때 같이 묻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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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신부 집에서 했기에 신랑은 말을 타고 가야했고, 이에 ‘장가간다’라는 표현이 생겼습니다.
아이낳을 때까지 살다가 어느 정도 기반이 되면 다시 신랑 집에서 생활했으며, 결혼식 날에 신랑은 정3품 이상만 입을 수 있는 호랑이가 그려진 관복을 입었고, 신부는 공주들이 입던 녹원삼에 화관, 용잠으로 꽃단장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독일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촬영했으며, 한국의 전통 혼례 풍속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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