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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의 마지막 상궁, 김명길

by momentoushistory 2023. 3. 15.

‘궁녀는 궁밖으로 나와도 시집가면 안 된다’

궁궐에서 일하되, 언제든지 왕의 여자가 될 수 있기에 정조를 지켜야 했던 궁녀. 궁녀(宮女)는 궁인(宮人), 나인(內人), 여관(女官)이라고도 하는데, 본격적인 궁녀 제도는 고려 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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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대체로 500∼600명이 존재했는데, 궁녀는 최소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 수습나인(아기나인)에서 칠팔십 대의 원로 상궁까지 있었습니다. 그야 말대로 나라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인생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체계는 근대화가 이뤄지는 과정 속에 조선이 멸망하고, 왕조 정권 체계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완전히 무너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물결 속에서 조선의 마지막 상궁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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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 마지막 황후 윤 씨를 모셨던 김명길 상궁 1968년 윤황 후가 사망하자 창덕궁 낙선재를 퇴궁한 그녀는 곤궁한 삶을 살며,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조선의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상궁이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쓸쓸함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