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의 날'이 제정된 이유
'의병의 날'은 대한민국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국가 기념일로, 매년 6월 1일에 개최됩니다. 의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요. 국가 기념일로서의 '의병의 날'은 2010년 5월에 제정되었으며, 2011년부터 기념하고 있습니다.
처음 의병의 날을 제안한 사람은 1982년에 안호상 의병기념사업회장입니다. 4월 22일을 '의병의 날'로 정해 달라고 국회에 청원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에 홍의장군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병의 효시가 되었던 4월 22일을 '의병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한 것인데요. 그러나 이 청원은 그때 당시 바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2008년에 의령군수 등 1만 5586명이 '호국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한 이후, 2010년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습니다. 이때, 임진왜란 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1592년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선정하였습니다.
'의병의 날'의 제정 이유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영웅, '곽재우'
곽재우는 1552년 3월 15일부터 1592년 8월 2일까지 살았던 조선 중기의 무신입니다.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출생했고, 족보에 따르면 그는 경상 도호부사 곽상의 후손이었으며, 부친 곽승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용감하고, 똑똑하다는 평판을 얻었으며, 15세에 벼슬길에 오르려는 시험을 봤다가 불합격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곽재우 장군은 선조의 명을 받아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는데요. 그러나 1592년 5월 30일에 일본군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재우 장군은 일본에 가서도 조선을 위해 계속해서 저항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일본에서도 인정받았으며,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음에도 그 기회를 거절하고, 조선을 위해 계속해서 저항했습니다.
1592년 8월 2일, 곽재우 장군은 일본군에게서 도망치려다 사망하였습니다. 이러한 곽재우의 희생정신은 대한민국에서 의병의 날 제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는데요. 그의 의병 활동은 1592년의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 활동으로 인식되며, 이는 '의병의 날'이 6월 1일로 결정된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의 희생정신은 '의병의 날'에서 기리는 의병의 숭고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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