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과거의 역사적 인물들이 현대에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림과 동상을 통해 만든 상상도를 통해 역사적 인물들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1. 카이사르
Vēnī. Vīdī. Vīcī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고대 로마의 정치인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젤라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가 원로원에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문구인데요.
서양 황제의 시초로 기록되어 있는데, 카이사르가 황제였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이견이 있어 왔습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카이사르를 최초의 로마 황제로 여기는 풍조가 강했으며, 그 이름은 후대의 유럽 국가에서 황제를 뜻하는 단어로 변형되었습니다.
2.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유럽사 최고의 군사 전략가 중 한 명으로 당대 주변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대표적으로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있습니다.
프랑스 육군을 전반적으로 선진화시켜 세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역이었으며, 이후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나폴레옹을 따라 군제를 개편한 만큼 사실상 전쟁사의 근대를 완성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사의 변혁을 이끌어낸 인물이며 유럽이 18세기 시민 혁명 시대에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풍미한 인물이었습니다.
3. 헨리 8세
헨리 8세는 잉글랜드 왕국 튜더 왕조 제2대 국왕입니다. 귀족들을 거의 절멸시킨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 왕조를 개창한 헨리 7세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 아서 튜더의 죽음으로 왕좌에 올랐는데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잉글랜드 종교개혁, 그리고 국내외에서 벌어진 격렬한 대립, 6번의 결혼 생활 중 2명의 왕비가 본인에 의해 처형당한 요란하기 그지없는 사생활 등, 재위 기간(1509~1547) 동안 여러모로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4. 알렉산드로스
만약 그가 신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그저 신이라고 불러주는 수밖에
알렉산드로스가 도시국가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대접하라고 쓴 명령문을 받자 스파르타인 다미스가 했던 말인데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단지 군사적인 업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수학, 과학 기술의 발달과 정복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경제적 교류와 이민족들에 대한 포용 정책으로 인해 탄생한 세계시민주의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해 전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능가하는 그의 더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석굴암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간다라양식도 거슬러 올라가면 알렉산드로스의 업적과 관련된 것이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짧은 인생 동안 남긴 업적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닙니다.
5. 루이 15세
프랑스 부르봉 왕조 제4대 국왕 루이 15세는 프랑스는 안 그래도 루이 14세 때의 대전쟁들로 인한 빚으로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는 루이 15세 때 더욱더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및 7년 전쟁으로 인해 더욱 더 심각한 빚을 떠안게 되었을뿐더러 7년 전쟁 때는 대부분의 국외 식민지까지 상실하게 되었는데요.
7년 전쟁 직전 1753년의 프랑스 국가 부채는 무려 13억 6천만 루블 현재 가치로 3240억 달러였으며, 7년 전쟁이 끝난 이후인 1764년에는 23억 5천만 루블 현재 가치로 6000억 달러에 달하게 됩니다.
6.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역사 및 정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일생이 영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행보와 거룩한 희생으로 끝맺어졌다는 점과 함께 한 나라로서의 아메리카 연방을 완성했다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링컨 이전의 미국은 어디까지나 각 주(州)의 연합체였을 뿐 한 나라라는 의식은 희박했는데요.
조지 워싱턴이 물려준 미국이 주끼리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체할 수 있는 연맹이었다면, 링컨이 물려준 미국은 하나의 나라이자 운명을 같이하는, 진정한 '미합중국 The United States'가 될 수 있었습니다.
7. 아우구스투스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본인 스스로는 한 번도 황제, 왕을 자처하지 않았는데요.
그러나 역대 로마의 프린켑스 중 "프린켑스 = 종신 임페라토르"라는 공식을 만들고 이를 아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자신의 혈육들에게 합법적으로 승계해 프린키파투스(원수정)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로 인하여 후대 로마인과 역사가들에게 로마 최초의 황제, 유럽 최초의 황제로 평가받습니다.
8.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정부로부터 국고 낭비, 정부의 부패,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루이 16세를 타락시킨 혐의, 백성에 대한 기만, 프랑스를 멸망시키려는 시도, 전쟁 유발로 기소당하여 사형을 집행받게 사형을 집행받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 앞에 설 때까지 품위와 침착함을 잃지 않았는데요.
처형 직전 유언에는 사형 집행자의 발을 밟고서 남긴 "실례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실제로 사형 전에 그녀가 남긴 글에는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나는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까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9. 클레오파트라 7세
고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실질적 마지막 군주이자, 사실상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의 딸로서 고대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파라오'로 즉위한 마지막 인물입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독립 국가 이집트의 군주'로서의 파라오는 완전히 명맥이 끊기기 되는데요.
이집트를 지배하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칭호를 사용하고, 이집트의 파라오식 즉위 행사를 행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였으며, 이후 기독교의 확산에 따라 중단되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 이후 이집트를 다스린 군주들은 파라오 칭호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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